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똘이일기

일탈과 산책

들판 2017. 9. 24. 09:42

어제는 아빠가 벌초를 가신 날이었다.

아침일찍 1박을 예정으로 할아버지네로 떠나시고 오랫만에 엄마와 똘이 둘만 남게 되었다.

똘이의 일과는 이랬다.

 

오전에 축구를 다녀와서

다음 주로 예정된 수학 단원평가 공부 및 주말 숙제를 하는 것 정도가 계획되어 있었다.

 

지난 주부터 똘이는 축구 셔틀을 혼자 타러 나가고 있다.

이유는 이랬다. "엄마 오후에 나와 캐치볼 해줘야 하니 푹~ 쉬어..."

축구가 끝나고 현관으로 들어온 똘이가 한 말은 "오늘 한 골 넣었어~~"

그래서인지 기분이 좋아보였다.

원래는 사촌이 놀러오기로 했는데 예정이 틀어져서 속상한 듯 한데 겉으로는 별다른 표현을 하지 않았다.

 

점심으로 둘이서 근처 하누소에 가서 갈비살을 구워먹었다.

축구를 다녀오면 언제나 허기져한다. 갈비살 2인분, 차돌 된장찌게, 그리고 후식으로 물냉면까지 먹겠단다.

고기를 그닥 좋아하지 않아 나는 살짝 거들었을 뿐인데 물냉면을 제외하곤 거의 다 먹었다.

너무 많이 먹었다며 배를 통통 쳐 주는게 귀엽다. (내가 보기엔 아주 미세하게 나와 보인다..)

돌아오는 길에 똘이 핸드폰을 식당에 두고와서 다시 한번 다녀왔다.

엄마를 어떻게든 꼬셔서 놀이터로 가려고 애쓰는데 단호하게 집으로 데리고 왔다.

해가 좀 약해지면 나가기로 약속하였다.

 

오후에는 집에서 숙제를 하기로 해서

먼저 일기를 쓰고 수학 문제를 조금 풀다가 나와 장난을 한참 쳤다.

선생님이 주신 주제가 "욕"에 관한 것이라고 하는데 절대로 철자법 고치는 것도 허용하지 않는다..

궁금하지만 참겠다! 요새 부쩍 비밀이 생기려는 듯 한데 아직 꼭 그런 것만은 아니라는 걸 저녁 무렵에 알게 되었다.

 

6시에 집을 나서 캐치볼을 하고 저녁 식사 및 산책을 하러 가기로 했다.

집 근처 놀이터 공터에서 캐치볼을 하였다.

내가 던져주고 똘이는 잡는 것이다.

똘이는 사촌과 캐치볼을 하면서 자신의 연습량이 훨씬 작다는 것을 느꼈고 그걸 메우고 싶어했다.

땀을 흘리면서 열심히 하는 모습이 예뻤다.

하루 종일 나와 이걸 하려고, 양보도 하고 기다리기도 한 똘이에게 살짝 미안했다.

 

똘이 말로는 저녁 식사와 산책의 비중은 1:3 이다.

즉, 산책을 안할거면 저녁도 안먹겠다고 했다.

지난 봄, 여름까지 똘이와 저녁 산책을 가끔 다녔다.

생각해보니 어제는 아주 오랫만에 산책을 한 것이었다. 여름 방학 이후 처음이였는데 똘이는 굉장히 좋아하였다.

생각해보면 우리의 산책은, 아주 멋진 길을 걷는 것 보다는 그냥 걸으면서 대화를 나누는 것에 초점이 있다.

어제는 집을 출발하여 발바닥 공원을 지나, 문방구를 들려, 똘이가 얼마전부터 사고 싶어했던 공작용 글루건을 사고, 조금 걸어서 우동으로 저녁식사를 한후 근처 홈플러스에 추석한복을 보러 다녀온 것이 대강의 루트였다. 집에 도착한 시간이 9시 20분 경이니 2시간 정도를 넘지 않았다.

 

걸으면서 똘이에게 많은 얘기를 들었다.

몇 주 전에 다녀온 현장학습 소감을 여기서 들으면서, 우리가 서로 대화할 시간이 정말 부족했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시원한 저녁 공기가 조금은 쌀쌀하게 느껴지고

다리가 아파서 똘이가 업어달라고 하고

어릴 적 얘기도 해보고

못다한 지난 얘기도 하고

또 오늘, 이순간의 얘기도 하면서

함께 걸었다.

똘이는 그새 사촌에게 다음 주에는 놀러올 것이냐고 물어봤다고 했고, 그 녀석은 당연히 올거라고 했단다.

생각해보면, 똘이가 비밀이 생긴 것이기보단 우리가 서로 대화를 할만한 상황이 요새 잘 만들어지지 않았던것 같다. 아무때나 아이와 대화를 할 수는 없고, 아이가 말을 하고 싶은 순간을 기다려야 한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걸으면서

똘이는 조금은 신이나 보였다.

오늘 아빠가 벌초에 가셔서, 우리끼리 '일탈' 을 해보자고 했다.

그 녀석이 말하는 일탈이라는 것은 늦게까지 함께 산책을 하고, 집에 가서 영화를 한편 보는 것이다.

 

집에 돌아와 우리는 애니매이션 한편을 감상하고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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