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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밤

아빠의 의사선생님

들판 2010. 8. 30. 00:18
얼마전에 아빠가 진료받으시는 병원에 언니와 함께 다녀왔다.
3년전부터 이 병원에서 계속 치료를 받고 계시는데 근래 들어서 불편하신 곳이 많아지신것 같기도 하고
아빠의 상태가 그간 어떻게 진행이 되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하던 차였다.
그리고 병원을 방문하기전 인터넷으로 이런 저런 정보를 찾던 중에
아빠를 치료하시는 의사선생님이 전신마비를 극복하고 재활하신 분이란 사실과 함께
그분이 쓰셨다는 병상일기가 작년에 간행되어 나온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나는 그분의 특이한 인생사에 대한 관심보다는
솔직히 환자의 가족으로서 담당의사분에 대한 관심에서 그 책을 주문해두었다.

책이 내 손에 들어오기 전에, 아빠 병원은 무사히 다녀왔고
앞으로도 열심히 운동하고 관리하시라는 조언을 듣고 일단은 한숨을 돌렸으며
지난 주말에 책을 받아 주말사이에 다 읽었다.

책은 안으로나 밖으로나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모습이였다
내가 좋아하는 가벼운 재질(재생지인듯)에 한손에 들어와서 읽기에 편했고
그 내용도 전문적인 의학용어에 집착하지만 않는다면 쉽게 쓰여진 그리고 또한 한숨에 읽을 수 밖에 없는 그런 내용이였다. 그리고 간간히 눈길이 멈춰지는 대목들도 있었다.

이를테면 책의 서두에서 인용하고 있는 로마철학자 에픽테투스의 말 같은 것이 그랬다
"Man is troubled not by events, but by the meaning he gives them."
우리는 고난 자체보다는 그에 의미를 두고 괴로워한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는데
그래서 인간이 참 어리석다 싶으면서도 이런 습성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내가 참 안타깝다는 생각. 그리고 고요함. 묵상. 그리고 성숙한 인간이 된다는 것의 의미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그리고 평소 좋아하던 나단 스테어의 시(인생을 다시 산다면)가 그래도 얼마나 온실같은 행복의 한켠에 속해 있는 바램인 것인지 의사선생님의 연구실에 붙어 있다는 어느 교수의 [치매]라는 책자에서 아일랜드의 한 양로원에서 사망한 어느 여자 노인의 유품에서 발견되었다던 시 한편이 말해주는 것 같았다. 더 사실적이고 더 함축적이고 더 절망적인 인생의 모습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생각하고 또 생각하여 본다.
내가 사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잇는지, 하루하루 힘든 이 생활을 왜 이어가야 하는지.
지금 나는 계속 밟지 않으면 물속으로 빠질 물방아에 오른 처지와 같다."  -본문 중-

문득 얼마전에 읽은 전도서의 내용이 묘하게 겹치면서
한동안 생각에 잠기게 된다.
아마 앞으로도 이 문제에 어떤 뚜렷한 해답을 얻기는 어려울듯 하다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그 원칙을 생각하고 지켜나가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에 완전히 매 순간 동의하면서 승복하면서 살기란 정말 쉬운 일은 아니지 싶다.
고통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우리는 고난을 당했을 때 그에 대한 의미에 함몰될 것이 아니라
더 깊고 더 멀지만 정말은 단순한 것을 생각하고
나를 지키고 나에게 용기를 주면서 성실히 앞으로 나가야 하는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잠시나마 해본다.

진료실에서 뵙던 모습보다 훨씬 멋지고 신뢰가 가는 분이란 생각이 들어서
참 다행이다...!



나는서있다
카테고리 시/에세이 > 나라별 에세이 > 한국에세이
지은이 전범석 (예담,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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