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똘이의 뱀발

나 어린이집에서 양보만 했거든

들판 2009. 12. 28. 23:29
#1
어린이집 하원길에
똘이: 엄마, 나 내일 어린이집 가요?
엄마: 당연하지..
조금 있다가 다시 물어봤다
엄마: 어린이집 가기 싫어?
똘이: 응
엄마: 왜에?
나는 정말 별다른 이유가 있으리라곤 생각치 않았았었다
똘이: 홍길동이가 나보고 '이또리'래
(똘이의 본명을 가지고 놀리는 것이였다. 이름을 발음대로 하면 약간 우습게 되기도 하여서 언젠간 문제가 되리라 생각했었는데 4살반인데도 할것은 다 했다)
엄마: 그래서 너는 어떻게 했어?
똘이: 하지 말아 줄래? 라고 했는데도 계속 그랬어
똘이는 정말로 화가 난다는 말투였다
약간의 침묵이 흐르고...
엄마: 엄마는 성이 오씨쟎아. 그래서 어렸을때 애들이 오징어, 오뎅이라고 놀렸었다~
똘이: (웃는다)
엄마: 웃기지?
똘이: (웃으면서) 응
엄마: 원래, 장난꾸러기들이 그렇게 이름갖고 놀리는 거야. 엄마한테도 그랬구. 아빠한테도 그랬었대
똘이: (조금 표정이 밝아진다)
그리고, 조금 더 설명을 해 주었다
하지말라고 해도 하는 사람들은 세상 어디에도 있다
그렇게 놀리는 것은 별 문제가 되지 않는 일이다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친구들, 선생님과 잘 지내면 되는 거다... 라고.
똘이는 이렇게 따라했다
"그럴수도 있는거야~"

#2
책읽기 시간이였다
읽을 책을 골라오라고 해놓고선
엄마는 엄마책을 잠시 보고 있었다
헌데 녀석이 계속 같이 가잔다
그래서, 엄마도 책좀 읽고 싶으며 네가 혼자 골라오면 읽어주마 했다
그래도 안된단다
그래서 너도 양보 한가지는 해야 하지 않냐고 했더니
똘이왈, 나는 오늘 어린이집에서 양보만 했거든요. 랜다.
?? 이게 무슨 소릴까??
궁금해서 물어보았더니
소방차 옷을 입고 싶었는데 못 입었으며
갖고 놀던 장난감을 아까의 이름갖고 놀리던 그 녀석이 뺏어갔으며
......
이 말을 하는 똘이의 표정을 보니 참 속상했나보다

집에서는 모든지 혼자서 독자치하고 자기 본위로 생활하는 외동이라서
친구와의 나눔, 게다가 어린이집이라는 공동생활에서 어찌할수밖에 없는 제제.. 이런것들에 스트레스를 받나보다
적당히 스트레스를 견딜 줄 아는 똘이가 되어주었으면...

#3
침대에 나란히 누웠다
똘이가 자기 이불을 같이 덮자면서 정성스럽게 펼쳤다
그 모습이 귀여워서 엄마는 안아주면서 자겠다고 했는데
이녀석 절대 싫단다
쪼그만게 고집이 너무 센게 또 귀여워서 꿀밤을 한대 먹였는데 (아주 살짝) 아무런 반응이 없다.
그런데 조금있다가 벌떡 일어나더니 밖에 나가서 자야겠단다
그래서 못가게 잡는다는게 옷을 잡아당겼는데
그 와중에 이녀석이 두꺼운 책을 내 팔에 떨어뜨렸고 (물론 난 그냥 봐줬다)
완강히 나가려는 제스츄어길래 맘대로 하라싶어 그냥 놔줬더니
이녀석이 침대 밑 이불에 그냥 누워버린다
누워서 작은 자동차 두개를 만지작 만지작 하면서 좀체 잘생각이 없어보여서
나는 거실로 나와서 조명등을 켜고 책을 읽으려 했다.
아마 곧 남편이 들어올 시간이고 이녀석이 금새 잠들 일은 없겠다 싶어서..
그런데.
갑자기 안방에서 문이 열리고
나는 정말 이때까지도 이녀석이 화가 난줄은 몰랐다
그냥 기분이 약간 나빴었지만 별일이 아니였기에 웃으면서 나와 함께 아빠를 기다리려나보다 했었는데
문이 열리더니 이녀석 왈 "엄마, 내 옆에서 자지마!" 하더니 문을 닫고 안방으로 다시 들어가버렸다
어? ??? 어안이 벙벙..
그러더니 재차 문을 열고 똑같은 말을 외치고는 이번엔 더 세게 문을 닫고 들어가버린다
단단히 화가 났나본데 참...
안방에 뛰어들어가서 녀석을 안아주었다
녀석은 울먹울먹거린다
자기는 나때문에 화가 났단다
그래서 내가 뭘 잘못한건지 잘 모르겠으니 말해달랬더니
꿀밤을 때린것과 옷을 잡아당긴것 때문이라면서 울먹거린다
거참..
똘이가 원하는건 나의 사과와 따뜻하게 안아주는 거였다
근데 나는 좀 걱정이 되었다.
똘이가 원하는 방식대로 내가 늘 반응해야 되는것은 아니다
엄마가 꿀밤을 때릴수도 있고 제지하려다가 옷을 잡아당길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똘이에게 네가 엄마를 좀 이해해줄순 없냐고 물었다
계속 울먹거리면서 녀석은 안된단다
그럼 너도 엄마 꿀밤을 때리랬더니 아주 단호하게 싫댄다
그럼 너도 엄마 옷을 잡아당기랬더니 아주 단호하게 싫댄다
여러가지 설명과 설득을 했지만 전혀 먹히지 않는다
자기는 그게 너무 싫으니깐 그렇게 하지 말랜다
그러면서, 그렇게 울먹이면서 연신 하품을 하는데 거참 더 이상 설득을 하는게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게다 녀석은 아주 감정이 가득 실린 말투로 주장한다
자기는 밖에 나가서 잘려던게 아니고 엄마때문에 화가 나서 그랬다고
몇번 이 이야기를 하는걸로 봐선
책이 내 팔목으로 떨어지게 된것이 미안했던거 같다
게다가 북받쳐오는 말투로다가 (자기랑 같이 덮자고 했는데) 내가 이불도 같이 안덮었단다.
아니라고! 덮고 있었다고 말해주었다.

아무튼 나중에 다시 얘기해보는것으로 마음먹고 그냥 안아주었다
그리고 재우려는데 엄마 불 꺼야지. 라고 한마디.
거실에 책 읽으려고 켜둔 조명등까지 챙긴다
똘이는 눕자마다 오분만에 잠이 들었다
주말이 지난 월요일에다가 거품목욕까지 즐겁게 하고 또 엄마와 한판까지 했으니 피곤할법도 했구나...

이 녀석을 어찌할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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