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똘이일기

똘이 형님의 사회적 부침, 이기적인 할머니들

들판 2010. 7. 12. 15:10

이건 어디까지나 똘이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하나의 사례일 뿐이다.

지난 주말, 똘이와 집근처 초안산 근린공원(창골 잔디구장이라는 명칭으로 도봉구의 10대 명소라고 구청에서 홍보하는 곳 중의 하나이다)에 다녀왔다.
이곳은 큰 축구장이 하나 있고 그 둘레에 트랙이 있어 걷기, 인라인,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에게 이용되는 곳이다.
주말에야 짬이 나서 가보면 늘 사람들로 넘쳐난다. (솔직히 짜증나는 경험이 많은 곳이라 가고 싶지 않지만 똘이가 자전거를 그나마 맘놓고 탈만한 곳이 없어서 이곳을 가게 된다. 어제도 그랬다. 우울하군..)

나는 트렉을 걷고 똘이는 그 옆에서 자전거를 타고 있었다.
똘이는 완전 신이 났지만 엄마가 따라오는지 계속 뒤를 돌아보느라 집중을 못한다
문제의 사건은 그때쯤 일어났다
근처에서 트렉을 돌고 있던 할머니(50대 후반에서 6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두 분이 똘이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뭐라고 말을 건네는 것을 보고 나는 발걸음을 급히 옮겼다.

똘이의 자전거는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고 그 뒤에 대로 할머니들은 이런 말들을 나누고 있었다
"………………… 재가 말귀를 못알아듣는거 같군(반복해서). 모르는거야.. 재가 무슨 말인지 어찌 알겠어.
그리고는 "….부모가 잘 가르쳐야지 애가 저러지 않지..부모가 저런걸 보고 그냥 두니 애가 저러는 거지…"

나는 순간 똘이가 저 말을 못 들었으면 했다.
똘이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나는 똘이에게 정말 많은 말을 건네왔었다.
물론 다 이해하리라 기대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나의 그런 태도가 똘이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고
또 그런 것을 떠나서 똘이란 인간에 대한 내 나름대로의 존중의 표시였다.
똘이는 할머니들이 건넨 말의 의미를 100%까지는 아니지만 90% 이상 이해했을 것이다.

나는 곧 내가 저 아이의 보호자라고 밝히고 무엇이 문제인지를 물어봤다.
할머니들은 똘이가 규칙을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자전거는 제일 바깥쪽 트렉에서만 타야 하는 규정이 있다고 강조했다. 자전거는 위험하기 때문에 원래는 타지 않아야 하는 것이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솔직히 그런 규정을 나는 몰랐다. 그리고 그건 기본적인 '상대방에 대한 배려'라는 원칙보다 못해 보인다.
나는 가만히 "알겠다" 고만 말하고 똘이에게 다시 한번 일러준 뒤에 옆에서 함께 있어주었다.

트렉을 돌으면서 기분이 참 씁쓸했다.
실상 자전거는 똘이 정도 되어 보이는 아이가 모는 두 세대 정도가 고작이였지만 할머니들 입장에서는 걷기에만도 그리 넉넉하지 않은 공간이였을 것이다. 넓은 근린공원의 반 이상은 오직 축구를 위한 공간이고 그곳은 아주 소수의 사람들만이 점유할 수 있으니 말이다. 도대체 근린공원의 축구장을 청장년의 성인남자들이 주말마다 점유해서 사용하다니 완전히 가부장적인 문화가 공원의 공간을 사용하는 문제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나고 있어 기가막힐 노릇이다.

이런 구조적인 문제로 인해 남은자들간의 경쟁이 어쩔수 없다손 치더라도
설령 그렇다해도 할머니들은 다섯살짜리가 자전거 타는 것을 그런식으로 모욕해야만 했을까.
어른답게 지도해주는 것으로 끝낼 수도 있었을 것을
아이의 인격을 무시하고 그 아이의 부모까지 싸잡아 아주 쉽게 모욕을 주는 할머니들은
인정없어 보이고 이기적으로 보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참 배려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똘이는 크게 괘념치 않는듯 보였는데 알고보니 꽤나 맘이 쓰였던가 보다. 남편말이 똘이가 규정 트렉을 벗어나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왜 걷는 사람들이 자전거 타는 트렉에 멈춰서 있는지를 궁금해 했다고 한다. 똘이 입장에서도 이것은 공평하지 않아보이는 상황이였나보다.

이곳은 자전거 타는 트렉인데 왜 사람들은 계속 이쪽으로 와요?
왜 사람들은 자전거가 갈 수 없게 길을 가로막고 서 있어요?


….. 나라면 대답해 줄 말이 없었을 것 같다. 남편은 뭐라고 대답해 주었을지..

똘이가 아장 아장 걷는 아이였을 때 똘이를 데리고 나가면 걸음마다 주위의 탄성이 났었는데
이제 어엿한 형님이 되었음을 이렇게 할머니들을 통해서 인정받게 되었다.
그리고 아이를 키우게 되면서 과거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많은 것들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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