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똘이의 뱀발

엄마 이름 지우고 아빠 이름 써!

들판 2010. 12. 9. 12:56
어제 저녁엔 부모자식, 엄마와 아들사이란 과연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한 사건이 있었다.

매년 어린이집에서는 다음해의 재원신청서를 작성하게 하고 있고
나는 며칠전부터 남편을 재촉해서 증빙서류를 갖추었고(내것은 진작에 준비를 했다)
어제 그 마감작업을 하려했다.
뭐 아주 간단한데 재원신청을 희망합니다에 동그라미를 치고 보호자란에 서명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문제는, 열시 가까이 되서 귀가한 남편이 마침 옆에 있었고
똘이도 그걸 보고 있다가
보호자란에 내가 나의 이름을 적고 사인을 하자
지우개를 갖고 달려와선 엄마 이름을 지우고 아빠 이름을 쓰라고 당당하게 요구하면서 시작되었다.

처음엔 좀 당황스러웠을뿐이였는데
슬슬 화가 치밀어오르더니 대체 왜 얘가 이러는가 에 이르러서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는 엄마고 늘 똘이의 보호자였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물론 남편의 역할도 만만치 않았지만
나는 정말 쉼없이 똘이를 보호할 상황에 투입되었고
나는 정말 최선을 다해서 즐거운 엄마노릇을 했었다. 
때로는 반자발적이기도 했지만 우리가족에게 최선이라고 생각했고
희생한다는 생각보다는 행복과 사랑이라는 마음이였다
그런데 이 녀석이 감히 보호자=엄마를 지우고 보호자=아빠 로 바꾸겠다고 나선것이다.
가정 내에서의 보호의 책임
매일 어린이집에 데리고 다니는 일의 거의 99%
그 유난스러웠던 병원출입의 거의 99%
그밖의 거의 모든 똘이와 관련된 부분에서 실제적인 보호의 책임은 엄마의 몫이였다.
누군가 일을 해야 하고
한국의 직장생활은 일상적인 가정생활과 병행하기 어려운게 현실이고
그럼에도 아이는 존재하니깐. 사랑스러운 존재이니깐.
그렇게 지내왔다.

이유를 물었다.
한차례 혼난 상황이였기떄문에 울먹이면서 말하길, 엄마는 잘 안놀아주고 아빠가 잘 놀아줘서 그랬단다.
아니다. 이건 진심이 아니다. 아이는 아빠와 둘이서만 있는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었다.
늘상 옆에 있는 엄마보다는 가끔씩 보는 아빠가 훨씬 신선하고 즐겁고 멋지기 때문이다.
엄마는 아이에게 그저 쉬운 편한 상대였던 거다.

물론, 아이에게 그런 존재가 필요하다
엄마 아니면 누가 해줄까 싶은 마음에 어리광과 떼를 많이도 받아주었었다
원래 너무 예쁜 아이여서 넘치게 사랑을 주고 싶기도 했고
어린이집을 보낸 이후로는 안스럽고 미안한 마음이 컸었다

하지만 그 순간 억울함이 북받쳐올랐다
나는 도대체 뭐지?
내가 왜 아빠한테 밀려야 하지? 아직 얘는 다섯살이고 엄마 99% 의존적으로 살면서 어떻게 감히 이럴수가 있지?
내가 얘한테는 대체 어떤 존재인건지 회의감이 들었다
얻기 어려운 것이 애초에 마음이라지만
나로선 다른 모든것을 제쳐두고 투자한 것에 대한 댓가로선 너무 초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정말 아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또 어떻게 가르쳐야 할까?
부모노릇 한다는 게 정말 뭘까?
나는 정말이지 똘이에게 좋은 엄마가 되어주고 싶다.
부모자식의 인연이라는 게 평생을 가는 것이고
그래서 어릴때, 커갈때, 또 똘이가 어른이 되어서도 그런 존재가 되어주고 싶었다.
그런데 막상 쉽지가 않다.
제길이다 정말...

남편에게 이런저런 불만을 다소 격앙되어 늘어놓았더니
"그럼 버려??" 란다
답답해서 나온 말이겠지만
가끔씩 놀란다.
도와달라고요 남편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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