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똘이의 뱀발

청소하는 말이네에?

들판 2009. 1. 19. 23:38
#1
오랜만에 아가처럼 어부바해서 어린이집을 등원하고 하원시킨 날,
집에 오면 엄마는 아마도 아무생각없이 "힘들다" "무거워"를 남발했나봅니다.
아파트 현관을 들어서서 엘리베이터앞에 섰는데 등 뒤에서 똘이가 이렇게 말합니다

"엄마, 힘들었었지요?"

원... 오늘은 똘이 효자 탄생일입니다.

#2
청소를 하려고 하는데 똘이가 오늘은 하기 싫답니다.
그래서 "엄마가 할테니깐 너는 쉬어라" 했지요
사실, 지가 하긴 뭘 합니까. 그냥 걸레봉 들고 다니면서 엄마를 성가시게 할 뿐이죠.
하지만 지딴엔 그게 아니였나봅니다.
조금 있다 엄마에게 와서 조심스럽게 물어봅니다.
"엄마, 혼자하면 힘들지요?"
아마도 언젠가 엄마가 해줬던 얘기가 기억났나봅니다. 혼자하면 힘들지만 같이하면 그리 힘들지 않다고...

# 3
물걸레로 바닥을 닦고 있는 엄마 뒤로 다가온 녀석
여느때처럼 재빠르게 등으로 기어올라옵니다
보통은 어부바할때처럼 등에 찰싹 달라붙어 있는데 오늘은 얼른 말 타는 자세를 잡더군요
그러더니 이럽니다
"엄마, 말탔어"
"으음...청소하는 말이네!" 
오늘 엄마는 청소하는 말이 됐습니다 ㅋㅋ

#4
세면대 앞에서 세수를 시키는 중이였습니다.
감기기운이 있어서 킁도 몇번 시키고
저녁으로 먹은 카레가 입 주위에 묻어있어서 비누도 칠해서 싹싹 씻어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냥 한번 눈썹을 쓸어주었지요.
물이 묻어 있는 눈썹은 결따라 예쁘게 정돈되었어요.
무심결에 아래쪽으로 쓸어주었더니 이 녀석이 거울에 비친 지 얼굴을 보고 웃더니
"아빠 같애.." 라고 웃으면서 이야기했습니다.
사실 엄마는 결혼전부터 똘이 아빠 눈썹을 놀려먹었었어요.
배추도사, 무 도사 눈썹 혹은 마시마로 눈썹이라구요
근데 우리 똘이 눈썹이 꼭 닮았지 뭐예요. 어찌나 신기하던지...
이제 똘이도 그걸 알았나봅니다.

#5
똘이의 저녁은 늘상 비슷합니다.
동화책을 다 읽고나면
쉬야를 하고 물을 마시고 기저귀를 하고 잠자리에 듭니다.
물컵을 똘이의 뽀로로 책상위에 놓아주고 엄마는 먼저 방으로 들어왔는데
이 녀석이 한참을 지나도 들어오질 않는거예요(한 오분쯤 지났을까요?)
뭘 하나 싶어 살짝 문을 열고 살폈더니
책상앞에 가만히 앉아서 물컵을 꼬옥 손에 쥐고 있더군요.
아기도 멍 때리기 취미가 있나 싶어 살짝 웃음이 나오는걸 참으면서
모르는 척 "똘이야, 이제 방으로 들어와야지" 하면서 다가갔지요.
그랬더니 이녀석 태연히 말합니다.
"이거 다 마시고 들어가려구" 라고 말하며 얼마 남지 않은 물컵을 보여줍니다.
떼를 쓰지도 않고 짜증을 부리지도 않고 그저 담담히 자기 말을 하는 똘이 녀석..
그렇게 남은 물을 다 마시고, 컵은 싱크대로 갖다 놓고선 엄마랑 손을 잡고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물론, 그대로 코~ 자지는 않았지요.
노래를 여러 곡 주문했습니다.
"엄마돼지, 아기돼지", "곰세마리", "밀과 보리가 자란다", 등등등...
그거 다 듣고선 한참을 뒤척이다가 열시 십오분이 넘어서야 잠이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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