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똘이의 뱀발

엄마 미워!

들판 2009. 5. 31. 22:35
#1
똘이가 해달라는데로 반응하지 않는 상대에게 하는 말은
"XX  시~~러! "

근데 가만 생각해보니 주로 나와 똘이 아빠에겐 이렇게 쓴다.

엄마 미~~워!
아빠 시~~러!

아무래 아이라서 엄마로부터 자아가 완전히 독립되지 않은 탓이 아닐까 싶다.

#2
일요일 오후, 오랜만에 점심먹고 동네 서점 나들이 갔다 왔다.
오는 길에 올해 처음으로 팥빙수도 먹고 집으로 돌아오니 세시쯤...
똘이는 서점에서 사온 퍼즐을 맞추고
아빠는 게임 프로그램을 보시고
엄마는 똘이 옆에서 심심풀이 책을 보고 있었다

그런데 엄마는 책 읽다 깜박 졸았다
깨어보니 십오분쯤 지나있었을까?
똘이는 혼잣말을 하면서 놀고 있었다

엄마: 똘아 엄마 너무 졸려.. 안방가서 자도 될까?
똘이: 응. 그래도 되!

근데 다행히 그새 잠이 깨어버려서 다시 똘이 옆에 와선
똘이가 같이 하고 싶다고 하던 코코몽 퍼즐 맞추기를 하였다

똘이: 엄마, 아빠 어디갔어? 아빠 또 자는거 아냐?

TV는 꺼져있었고 조용한것이 분명했다
암튼 4살짜리가. 너무 천연덕스럽게 얘길해서 우습다.
4살짜리의 능력에 대해서 똘이를 보면서 참 많이 생각하게 된다.
아무튼!
문득, 똘이가 이런 말을 던졌다.
똘이: 엄마, 아빠가 담배피우셔서 돌아가시면 어떻게해?

똘이 딴엔 아주 심각하게 걱정스런 눈치였다.
똘이는 말을 새겨듣는다.
한번 얘기한 것도 잊지 않고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음을 상기시켜줄때마다 참 놀랍다.

아마도 평소 내가 아빠가 담배를 피운다는 사실과 담배가 건강에 너무 해롭다는 것과 담배 피우다(사실 병의 원인이야 복합적이지만 담배의 역할역시 치명적이라 이렇게 얘기해도 되겠지 싶었다) 폐암걸려서 얼마전에 돌아가신 똘이 어린이집 친구의 할아버지를 얘기를 해줬던 데다가 지난주 노전대통령 서거 관련 방송을 보면서 "돌아가시다"란 표현을 익힌게 아닌가 싶다. 아무튼. 큰 애가 그런말을 한다면 방정맞다고 혼낼법도 하지만 네살짜리 꼬마가 걱정스럽게 내뱉은 말을 듣고 나니 뭐라 할 말이 없었다.

나는 그냥 "그래, 그러니깐 우리가 아빠 담배 얼른 끊으시라고 하자! 똘이가 아빠한테 잘 말해야되!"라고 하였다. 아마도 나의 이런 말이 똘이에게 상기함의 임무를 각인시킨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이 아이에게 무엇을 어떻게 해줘야 할지 참 어렵다.

#3
똘이는 벌써 좋아하는 TV 프로그램이 있다.
예전에는 뽀로로..
근데 요샌 냉장고나라 코코몽과 그리고 신기한 스쿨버스란 것을 본다.
집에서 메가티브이를 보기때문에 사실 똘이가 볼만한 프로그램은 많지만
조금씩만 보여주려고 한다. 하루에 30분 정도가 넘지 않도록.
아무튼 오늘은 "신기한 스쿨버스"를 보고싶다고 하여 한개를 틀어주고
나는 내 볼일을 보러 나가려고 하였더니 이녀석이 내 손목을 잡으면서 같이 보잔다.

사실 평소에도 똘이는 나와 같이 자기가 좋아하는 프로그램을 보고 싶어한다.
매번 같이 보자고 하였지만 엄마는 집안일을 해야 하니깐 혼자보라고 하였고
다만 한편이 끝나면 엄마를 부르게 하였다.
몇번의 예외는 있었지만 똘이는 애니메이션의 끝나는 노래가 나오면 "꺼주세요! 얼른!!" 이라고 화급히 나에게 와서 말했다.

평소의 똘이를 아는지라 차마 거절하지 못하고 똘이 옆에 앉았다.
그러다가 평소에 똘이가 잘 안해주는걸 요구했다 ㅋㅋ
엄마: 똘아, 엄마가 똘이 다리베개 해도 되니?
똘이: 응! 해도 되!

네살짜리 아이의 다리를 베고
티브이를 등지고 누워 똘이를 쳐다보면서 한손으로 허리를 감싸안고 누워있었다.
달콤한 냄새가 나고
똘이의 따뜻한 기운이 전해져 왔다.
행여 똘이가 무겁다고 하지 않을까 걱정하면서 그래도 오래 오래 이렇게 하고 있고 싶은 맘이였다 ^^

엄마: 똘아, 엄마 머리가 무겁지 않어?
똘이: 응. 무거워. 근데 괜챦아. 계속해도 되.

십분이 넘지 않는 시간이였지만 정말 행복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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