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1 | 2 | 3 | 4 |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
- #GalaxyWatch4 #GalaxyWatch4Classic #갤럭시워치4 #갤럭시워치4클래식 #워치4 #워치4클래식 #갤럭시워치 #삼성헬스 #갤럭시워치4최초체험단 #체험단 #워치4체험단 #워치4체험 #삼성닷컴 #티머니 #GooglePlay #
- 어린이집 선생님
- 인내가 필요
- 논문
- 똘이근황
- 한해 계획
- 열감기
- 인터뷰
- 육아
- 하루
- 짧은답
- 연동교회
- 남편
- 어린이집
- 부부싸움
- 이성희
- 고딩아들
- 엄마가 미안해
- 블로그
- 감기
- 우울증
- 1년 정리
- 통일의 집
- 사랑
- 영화
- 동화
- 오래된 벗
- 똘아 사랑해
- 시댁
- 리뷰
- Today
- Total
목록기억과 소망 (11)
느릿 느릿 인생
박 사 논 문 사실 2년 반 정도의 시간이 소요 -1년은 주제잡고 방황하고 -1년은 글 쓰고 -6개월 동안 심사받고 수정하고 논문을 쓸 때 내 머릿속에 있었던 원칙들 1. 스승님들의 조언: 글쓰기의 기술 & 발표준비를 위해 타 논문을 적절히 이용한다 기록을 활용하여 다양하게 설명한다 빨리 글로 써본다 내 주제에 집중할 것 내 의사를 좀 더 명확해야 할 부분 내가 수용할 것과 수용 못 할 것에 대한 내 생각을 구분하여 정리할 것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나의 포인트를 밝힐 것 용어와 개념을 내 연구와 관련해서 의미화 할 것 논문 전체에서 의문점을 던지고 해답을 제시할 것 글쓰기적인 노력이 필요한 부분 사실과 내 생각을 구분하고 설명을 충분히 제공 뚜벅 뚜벅 걸어라 절대적인 내공부족! 전체적인 분량을 어울리..
나 어릴적에 엄마가 마호병에 따뜻한 물을 넣어두었다가 주셨던것이 생각난다. 언젠가부터 사라졌었는데... 전축도 그렇다. 나무로 만들어진 것이였는데 가끔씩 동요를 들었었던것 같다. 크리스마스 무렵에 그 전축에 캐롤을 걸어놓고는 셋이서 신나했던 기억과 초등학교시절 피아노학원에서 안단테 칸타빌레를 잘 치기 위해서 음반을 사서 들어봤던 기억이 있었다. 그 전축도 중고등학교 무렵인가 사라졌었다. 또, 엄마의 재봉틀.. 어릴적 엄마가 몇번 작업하시던것을 본적이 있는데 그건 또 언제 사라졌을까.. 예전에는 결혼전에 수예를 배우던것이 유행이였다고 한다. 엄마의 작품을 몇점 본 기억이 난다. 그러고보면 엄마는 신부수업까지도 착실히 하고서 결혼을 하셨었구나. 하지만 엄마도 안했던것도 있다. 바로 요리! 언젠가 들은 기억이..
대학원시절 다음날 발제를 앞두고 준비가 덜된 나머지 아니 사실 닥쳐서야 하는 버릇은 여전햇어서 잠을 설치고 집에서 4시 반에 일어나 학교로 향햇던 날이 잇엇다 찬공기와 어둑햇던 그날 새벽이 문득 떠오른다. 수위아저씨 건물마다 계시던..와 안면이 잇던터라 현관도 열어제끼고 학과사무실에 짱박혀서 컴퓨터 자판 만 두드렷던 그날 아침이 생각해보면 웃음나는 기억이다..
예전에 싸이월드를 할땐 주위사람들에게 보여주려고 사진만! 올리곤 했는데 블로그를 하게되고나선 아니, 사진찍는것을 점점 멀리하게 되면서 아니, 노트북이 점점 늙게되면서 사진이 데탑에 저장되면서 사진 올리는게 자꾸만 귀챦아진다 다만, 그날 그날의 단상만이라도 기록하는것에 감사하기때문에? 일지도 모르겠고! 하여간에, 내가 디지털로 사진찍기를 시작한 것이 바로 예솔아가 때문이였는데 내 예쁜 조카 예솔이가 이제 벌써 4학년이 되었고, 아기 수찬이도 3학년이며 내가 결혼하던 해에 태어난 예루는 영어유치원에서 괄목할만한 활동을 보이고 있다고 하고 우리 똘이와 준찬이도 벌써 다섯살이 되었다. 아이들은 쑥쑥 크고 있으니 그만큼 시간이 지났건만 나는 여전히? 이렇게 살고 있구나! 영원히 제일 예쁜 내 첫 조카.. 나는 똘..
첫사랑을 기억하자 교회에서 목사님이 즐겨하시던 설교제목이 문득 떠오른다 살면서 처음이라는 수식으로 기억되는 사람, 사건, 일터... 삶 자체가 처음이자 마지막! 일것이지만 유난히 처음 이라는 것의 영향력은 작지 않음을 느낀다 내가 급여를 받으면서 처음 생활은 한 곳은 학교였지만 학생을 겸하고 있었기때문에 엄밀한 의미에서 첫 직장은 교육원을 졸업하고 들어간 회사가 되겠다 첫 직장은 홍대 근처였는데 아침에 한시간이 넘게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가서 홍대 지하철역을 빠져나와 회사까지 십여분을 걸어가야했었다 나는 빨리 회사에 가고 싶어서 늘 그 길을 뛰어갔던것 같다 첫 직장에서 난 사람들에 취해서 살았던것도 같다 그 시절 일기장을 보면 회사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아직도 그 시간을 제대로 정리하지 ..
꼬맹이는 내 동생이다 어릴때 별명이 개고기였던 내동생을 난 꼬맹이라고 부르곤 했었는데 지금은 두딸의 엄마이고 중학교에서 도덕을 가르치는 베테랑 선생이 되어 있다 꼬맹이가 밤새 보낸 문자를 지금에야 봤다 전날밤에 엄마가 죽는 꿈을 꿨나보다 (나도 사실 며칠전에 동생과 남편이 죽는 꿈을 꾼적이 있다. 동생은 벼르던 라식수술을 하기 전날이였고 남편은... 늘 걱정을 하니깐... 그랬던게 아닐까..남편에게 말했더니 너무 걱정되서 그런거라고 말해주었었다) 엄마 아빠가 아프고 늙어가는 모습이 갑자기 눈에 들어왔는지 슬픈 마음 금할수 없다며 그래선지 요즘들어 어릴적 생각이 부쩍난다는 내용이였다 조카들이 열한살, 일곱살이 되니 이제야 조금 주위를 돌아보고 과거도 되새겨볼만한 시간이 되었던게 아닐까 엄마노릇, 선생님 노..
나에게 처음 용기란 말을 인사시켜 주었던 친구가 있었다. 초등학교 4학년때 우리반 친구였던 양숙이~ 어릴적엔 그 이름이 약간 촌스럽다고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너무나 정겹다. 문득 내 옆에 친구가 있어서 이름을 불러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내 기억속의 그 아인 촌스러움과는 정말 거리가 멀었고 문학을 사랑하는 감수성이 풍부한 소녀였다. 내가 4학년 가을에 전학을 간 이후 중학교 1학년때까지 나의 펜팔친구였다. 나는 그 때까지만 해도 친구의 소중함을 모르는 정말 철없는 아이였다. 아무튼. 어느 날 보낸 편지에서, 나에게 용기가 있냐는 질문을 던졌었다. 너는 용기가 있니? 그 애는 그 즈음 학교생활의 어려움에 용기란 단어를 떠올렸던 것인데 나에게 너무 격조해서 솔직히 잘 모르겠지만 너는 용기가 있을것 같고 그랬..
아빠의 칠순이 지난지도 벌써 몇해가 지났다. 친지와 친구분들을 조촐하게 모시고 진행했던 식사모임에서 처음 이런 모임을 해보는 어설픈 자식들의 허전한 마음을 대신해서 짧은 영상을 만들었었다. 그때 엄마에게 부탁해서 아빠의 예전 사진들을 부탁했었고 그 덕택에 지금까지 몰랐던 아빠의 모습들을 재미나게, 신기하게 보았던것 같다. 나는 아빠 칠순을 준비하면서 아빠로서만 알고 있는 한 사람의 인생에 대해서 문득 궁금증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그 궁금증은 거의 그대로 있다. 사실... 우리시대의 아빠란 말없음과 권위적인 존재의 대명사가 아니였을까. 사진이 있었기에 말로 전해지지 못했던 많은 옛 기억의 조각들이나마 볼 수 있는 것이니 그나마 다행~! 우리집에서 제일 아빠와 대립을 많이 했던 언니가 사춘기시절에 ..